Jason Woo Interview (한글)

CJ에서 당신이 맡았던 원래 직책은 무엇이었습니까?

97년 4월1일에 대리로 입사해서 2000년에 과장으로 진급하면서. Gcity Part Director 를 하였습니다.

어떻게 그런 큰 회사에서 일하게 됐나요?

CJ 이전에는 LG Group의 IT 회사에서 일했습니다. CJ는 scout되서 입사했습니다. 제 자랑이지만 그당시 저는 30대 초반으로 매우 능력있는 사람이였습니다.

1997년부터 CJ에서 일하게 됐다고 하셨는데, 언제 유리도시에 대해 처음 들으셨나요?

1997년 CJ 입사할때 부서가 strategic planning team 였습니다. 그팀은 New Business 를 발굴하는 임무를 맏았는데 같은 팀의 동료가 유리도시를 담당하는 프로그래머 였습니다. 그당시 유리도시 팀은 프로그래머 1명이 전부였습니다. 나중에 함께 독립한 사람이 바로 그 프로그래머 였습니다. 저보다는 3년 먼저 유리도시를 알게된 사람입니다.

당신보다 앞서 유리도시를 맡았던 사람에 대해 기억하십니까?

Cityman 입니다. 입사는 저와 같이 했지만 저는 다른 Part의 일을 하였고 Cityman이 유일하게 유리도시를 담당하는 사람이였습니다. 이전에는 유리도시가 회사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99년도에야 팀원들을 늘기기 시작했고 2000년에 제가 과장 진급하면서 유리도시 팀장이 되었습니다.

오리지널 유리도시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들은 내용을 기억하십니까?

보내드린 history_of_avatar_glasscity.docx 를 참조하세요.

오리지널 유리도시를 방문해 보신 적 있으십니까?

없습니다.

방문해 보신 적 있으시다면, 당신이 가장 마음에 들었던 리젼을 기억하십니까?

방문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아바타 이름은 무엇이었나요?

‘어부(fisherman)’ 입니다.

혹시 유리도시 운영 당시 게임내 공지이벤트를 진행하시거나 월드 내 공지를 직접 띄우시기도 하셨나요?

직접 하지 않았습니다. 운영만을 담당하는 직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월드내에선 일반 시민이였습니다. 운영은 운영담당자만이 할수있게 했습니다. 운영담당자 아닌 다른 직원들도 아이템을 무상으로 지급한다던가 특혜를 주지 않았습니다~^^ 유리도시는 이름 그대로 맑고 투명하게 운영했습니다~~ㅋㅋ

CJ에서 일하면서 어떻게 유리도시 팀의 리더가 되신건가요?

Part는 달랐지만 1997년부터 유리도시와 같은팀 멤버였습니다. 2000년도에 과장(section chief)으로 진급되면서 팀내의 인터넷 사업을 맏게 되면서 유리도시 리더가 되었습니다. 그당시 유리도시 외에도 On-Line Education Business도 담당하였습니다.

유리도시의 리더가 됐을 때, 1997년 유리도시가 처음 오픈했을 당시부터 일했던 팀 멤버가 있었나요?

cityman이 97년도 오픈당시부터 일을 했습니다. CJ 입사는 97년에 같이했지만 저는 그당시 다른 파트였고 유리도시를 담당한것은 시티맨입니다.

당신의 팀에 몇 명이나 있었는지, 그리고 그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 기억하십니까? (ex: 프로그래머, 아티스트, 마케팅 디렉터, 월드 지킴이 등등)

2000년도에는 나중에 독립한 멤버 4명이 있었습니다. 이후 2001년 CJ에서 유리도시 서비스를 중단할때까지 프로그래머2명 디자이너 2~3명 서비스 기획 및 운영자 2명을 추가로 지원받았습니다.

정리해드릴게요. 저랑 일한 프로그래머가 2명이였는데 각각 서버와 클라이언트를 담당했습니다 2000년에 제가 과장으로 진급하면서 회사에서 저를 팀장 맡게 하였고 그때 들어온 사람이 클라이언트 프로그래머입니다.

퇴사한 서버 프로그래머의 유리도시 닉네임이 cityman 이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나머지 클라이언트 프로그래머도 회사를 같이 나가서 Cityman과 잠시 회사를 동업하다가 독립해서 지금은 자기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2000년 유리도시 팀에 합류한 뒤로 당신의 평소 하루는 어땠습니까?

매우 바빴습니다. 회사 경영진들에게 유리도시의 가능성에 대하여 어필해야 했습니다. 또한 당시 대표이사께서 매우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자주 보고를 드렸습니다.

유리도시 월드를 운영하며 들었던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습니까?

매우 많습니다. 그중 생각나는 것은 유리도시에는 결혼제도가 있었고 자식을 입양할 수 있어 가상사회에서의 가족을 이룰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현실 세계의 가족과 같은 연대감이 생겼습니다.

게임 내에서 당신과 팀 멤버들만 방문할 수 있던 특별한 공간은 어디였습니까? 월드 내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셨나요?

나의 팀만의 월드는 없었습니다. 각자 시민 생활은 별도로 했습니다. 월드는 출근하면 방문해서 근무시간내에 항상 접속했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리젼은 어디였습니까? (에메랄드/토파즈/페리도트)

모두 좋았지만 페리도트에서 외국인과 챗팅하면서 영어를 잘하길 원했지만 동시에 근무를 해야해서 오래할수가 없었습니다.

제 기억으로 유리도시 소프트웨어는 일본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했습니다. 일본 팀과 소통을 하셨었나요? 두 회사 사이에서 코드 공유가 어떻게 이뤄지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2000년도 마지막 기술이전으로 나의 팀원 3명이 일본에 갔었습니다. 그당시 들은 얘기는 일본 후지쯔는 Habitat 관련한 인력도 모두 없앴고 사업도 하지 않는것으로 결정했다는 것이였습니다. 2000년도 이후에는 artwork 관련 CD를 받은적이 없습니다. artwork에 대해 일본에서 받은 자료는 '번역_0812.hwp' 이 전부입니다. 나머지 문서들은 제가 만든것입니다.

유리도시 월드를 정기적으로 백업 해두셨는지 기억하시나요?

서버 다운이 자주 있었기 때문에 메일 백업하였습니다.

백업된 유리도시 월드가 아직도 어딘가에 존재할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cityman이 가지고 있을것 같습니다.

유리도시 팀을 위한 테스트 월드가 있었는지 기억하시나요? 일반 유저들은 들어갈 수 없는 월드 말입니다.

네 당연히 테스트 월드가 있었습니다. 신규 리젼이나 아이템 배포시 테스트 월드에서 이상유무 확인해서 정식 월드에서 반영하였습니다.

누가 유리도시의 새로운 리젼들을 만들었는지 기억하십니까?

운영을 담당한 직원이 있었습니다. 이 직원이 월드의 민원도 해결했습니다.

유리도시 리젼을 만드는데 사용하는 “씬빌더” 클라이언트를 가지고 계셨나요?

운영을 담당하는 직원만 사용했기 때문에 이름은 정확히 기억이 안나지만 리젼을 만드는 툴이 있었던것으로 기억합니다.

유리도시에서 새로운 아트를 어떻게 얻었습니까? 일본 월드에서의 아트를 얻었나요 아니면 유리도시만을 위한 새로운 아트를 가져본 적 있으신가요?

새로운 아트를 프리랜서 디자이너나 내부 디자이너가 만들었습니다. 물론 Palette 사용법을 제가 알려 주었습니다.

멤버들이 새로운 아트를 만들 수 있었다면, 그걸 유리도시에서 사용하도록 허용하셨나요?

네 허용했습니다.

*유리도시에 있던 스프레이 코드는 한국에서 직접 만드셨나요? 아니면 일본 소프트웨어의 코드에서 나온 건가요?

일본에서 나온 겁니다.

유리도시에 영어를 사용하는 유저들이 찾아온 것을 기억하십니까? 그때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실 수 있나요?

처음에는 한국인 소개로 몇명 왔었습니다. 얼마지나니까 외국인들의 수가 많아져서 별도의 월드를 오픈하게 되었습니다. 외국인 월드에서 활동하는 한국인들의 영어 실력이 매우 늘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나도 영어를 배우기 위해 외국인 월드를 자주 가려고 했지만 시간이 되지 않았습니다.

유리도시팀이 외국인 유저들이 나타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궁금합니다.

매우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외국인 유저들을 더욱 더 늘려 국제적인 서비스가 되는것을 기대했습니다.

외국의 월드를 방문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자주는 아니지만 방문하려 노력했습니다.

유리도시가 당신을 슬프거나 혹은 기쁘게 , 감정적으로 만든 적이 있습니까?

CJ때 유리도시 서비스를 중지하게 되어 담당자로서 매우 슬펐습니다. 추후 독립하였을때는 매우 기뻤으나 2년도 되지 않아 개발자들의 퇴사로 다시 중지하게 되어 심적 충격이 심했습니다. 이후에도 유리도시를 실패한 후유증이 심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아직도 있습니다.

드림시티에 대해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누구의 아이디어였나요?

나의 아이디어 였습니다. 유리도시의 그래픽 환경을 현대적으로 개선 시키는 노력의 일환이였습니다.

누가 3D 아트 스타일을 만들었는지 아십니까?

내가 아는 프리랜서에게 의뢰했습니다. 나의 대학 동기였습니다.

드림시티는 당신이 계획한 대로 이뤄졌나요?

기대한 만큼은 아니였습니다. 3D GAME 트렌드에 맞추려는 시도였으나 2D를 기반한 환경에서 3D 흉내를 내는 정도였습니다.

드림시티가 문을 닫는 바람에 실행하지 못 했던 계획이 더 있었습니까?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CJ가 유리도시를 닫기로 결정했을 때 무슨 일이 있었나요? 당신이 그 소식을 처음 들었던 사람인가요? 어떤 기분이 들었습니까?

문을 닫기로 한 것은 나의 결정이였습니다. 회사에서는 더이상의 투자를 할 의향이 없는데 계속 이어간다는 것이 무의미 했습니다. 팀원들도 불안해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회사에 투자를 안할거면 문을 닫자고 제안 했습니다.

CJ는 유리도시 서비스를 종료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느꼈습니까? 생각만큼 돈을 많이 벌지 못해 속상해했나요? 아니면 그만둘 수 있어서 마음을 놓았습니까?

매우 속상했습니다. 제대로 뭔가를 해보지도 못하고 그만두게 되었으니까요.

CJ가 유리도시가 더이상 수익성이 없다고 판단했을 때, 개별적인 회사를 운영하는 것은 누구의 아이디어였습니까?

유리도시가 드롭되고 핵심 팀원 4명은 자주 만났습니다. 그러던 중 서버개발자가 소스 분석이 90%이상 되었다고 하여 4명이 함께 독립하자고 의견이 일치 했습니다.

유리도시의 소유권을 받기 위해 CJ와 협상하는 것은 어려웠나요?

10개월 걸렸습니다. 최후로 당시 대표이사와 직접 면담을 하여 결정했습니다.

개별적인 유리도시 회사를 창설하기 위해 CJ와 협상할때 WorldsAway 테크놀로지에 관하여 누구와 이야기를 했습니까? Fujitsu Korea와 했나요 아니면 CJ의 법무팀과 이야기했나요?

CJ의 법무팀과 주로 협상했습니다. Fujitsu Korea는 크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새로운 유리도시의 웹사이트 이름이 “world60.com” 이었던 것을 기억합니까? 왜 그 이름이 선택됐는지 아시나요?

World60.com 이라는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웹 사이트 이름은 유리도시였었습니다. 혹시 월드의 이름이 world60.com 이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이 새로운 유리도시 회사를 설립했을 때, 당신의 원래 계획은 무엇이었습니까? 원래의 유리도를 계속 운영하길 원하셨나요? 아니면 업그레이드해서 좀 더 좋게 만들고 싶으셨나요?

업그래이드해서 웹과 연동된 가상사회 서비스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재미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고 현실세계와 밀접하게 연동되어 현실세계의 경제활동까지 가능하게 하는 것이 꿈이였습니다.

유리도시2002는 토토네집이 완성되기 전 까지의 임시 월드였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유리도시 99와 유리도시 2002의 차이점을 기억하십니까?

기능적으로 큰 차이는 없습니다.

(*2002는 드림시티이고 2000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 버전은 어떤 차이가 있었나요?)

드림시티는 3D Tool 사용하여 입체감이 더 있는 그래픽을 적용했습니다.

유리도시2002는 유료서비스였다고 들었습니다. 성공적이였나요?

초반기에는 기존 사용자들이 모두 도와주려는 분위기 였습니다. 하지만 업그레이드 버전이 늦어지면서 점차 매출이 줄었습니다.

토토네집은 누구의 아이디어였습니까? 그에 대한 배경 이야기가 있습니까?

CJ에서 독립 후 6개월정도 기획하여 모두 함께 만든 아이디어 입니다.

유리도시 소스 코드를 편집하여 토토네집으로 만드는 일은 많은 작업이었습니까?

거의 1년 반 걸렸지만 DB분리라던가 월드의 동시 접속자 제한 등의 중요한 부분은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토토네집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까?

1년 반 정도 걸렸습니다.

유리도시팀은 토토네집에 대해 어떤 생각이었습니까? 그들이 마음에 들어했나요?

토토네집이 완성된 시점에 개발자들이 퇴사를 해서 토토네집에 대해 자세한 얘기를 못했습니다.

토토네집은 왜 문을 닫게 된 것인가요?

개발자 2명이 퇴사를 했습니다.

토토네집이 서비스를 종료한 뒤 당신은 무엇을 했습니까? 유리도시에 대한 어떤 계획이 있었나요 아니면 아주 끝이었나요? 유리도시에 대한 계획을 더 세울 수 없었습니다.

새로운 개발자를 채용하려해도 사업 자금이 없었습니다.

토토네집이 종료된 뒤 유리도시의 자산을 누군가에게 팔려고 시도해보셨습니까?

곧바로 다른 사업 아이템으로 사업을 진행하게 되어 팔려는 시도를 하지 못했습니다.

유리도시 회사가 끝난 이래로 유리도시 멤버들이나 스태프들과 이야기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개발자들이 퇴사하고 남아 있던 기획자와 많은 얘기를 했습니다. 결국은 개발자들이 실력이 없어서 나간것으로 얘기가 되었습니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 다른 프로그래머가 운영했던 비공식 서버에 대해 들어 보신 적 있으십니까?

퇴사한 서버 개발자(cityman)가 직원을 시켜 운영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만약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무엇을 바꾸시겠습니까?

DB를 분리하여 웹과 연동되는 서비스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래픽도 세련되게 바꾸고 싶습니다.

유리도시를 운영하면서 가장 자랑스러웠던 점 하나를 말해 주세요.

유저들의 유리도시에 대한 애정이 깊은 것이 가장 책임감을 느끼게 하면서도 자랑스럽고 보람이 있었습니다.

새로 태어난 유리도시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로컬 서비스가 아닌 글로벌한 서비스가 되길 바랍니다. 유리도시는 충분히 글로벌한 서비스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